올해 1, 2월은 집도 없겠다 밖을 꽤나 자주 싸 돌아 다녔는데, 저도 오타쿠고 친구들도 오타쿠라 어느 순간부터 만화 카페에 자주 갔어요. 거기서 친구가 집어 온 책이 '이사'였는데,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서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2015년 읽은 만화들 중에선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플롯 자체는 정말 엉성해요. 이야기의 핵심적인 연결고리를 제외하고는 작가가 속된 말로 '꼴리는 대로' 썼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무리 없이 이야기가 부드럽게 흘러간 게 참 감탄스러웠어요. 거기에 그림도 제법 제 기호에 맞았고, 무엇보다도 대학생 청춘물이라는 소재 자체를 제가 워낙 좋아하는지라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자연히 작가인 사무라 히로아키 씨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어 작품들을 찾아 읽었어요. 대표작은 '무한의 주인'인 것 같은데 30권짜리 장편이다 보니 정신없던 와중에 읽기는 힘들어서 단편들 위주로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시스터 제너레이터'를 읽고 느꼈죠. 이 작가는 막 나가는 이야기밖에 못 쓰는구나… 물론 무한의 주인을 아직 못 읽었기 때문에 평가하기도 조금 뭣하지만요.
'할시온 런치'는 사무라 히로아키의 막 나가는 전개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실험적인 시도라고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고…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개연성이 어긋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냥 밀고 나가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시작은 사기로 사업을 말아먹은 겐(40, 무직)이 외계인 히요스와 만나게 됩니다. 히요스는 젓가락만 가지고 아무거나 먹어치울 수가 있어요. 그걸 뱉어 내는 것도 가능한데, 그러면 그 동안 먹었던 것들이 괴상하게 섞여 나오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이런 능력자를 보살피게 된 겐이 사기 친 사람을 찾아가 돈을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개가 계속 됩니다…
분위기는 밝은 개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위에도 적었다시피 별 희한한 연출을 다 써 가면서 개그를 치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집중이 잘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중간 무거운 이야기도 등장하기는 하나 무거운 분위기를 길게 끌고 가지 않아서 밝은 느낌이 계속돼요.
이렇게만 들으면 옴니버스 형식의 개그물 같은데, 엄연히 메인 스토리는 존재합니다. 사실 막 나가는 듯 보여도 설정들이 꽤 탄탄하게 짜인 편이라 이야기가 별로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아요. 또 이사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인물들의 감정만큼은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아서, 요란스런 작품 내에서도 캐릭터들이 흔들리는 일은 없습니다.
할시온 런치의 특징을 꼽자면 너무나도 난잡하게 전개되는 전개와 대비되는 깔끔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개그와 시리어스가 분리된 게 아니라 개그를 통해서 스토리를 차근차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2권이라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상당히 깔끔하게 완결이 났어요.
무엇보다도 작가의 그림 자체가 꽤 있어 보이는 그림이다 보니, 웃길 땐 웃겨도 진지해질 때면 그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사무라 히로아키가 플롯을 잘 짜는 작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만화를 잘 그리는 작가는 맞는 것 같아요.
이런 대사를 라이트노벨에서도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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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K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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