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북스

Talk 2016. 5. 24. 17:15

 요즘 나의 서브컬처 소비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플랫폼은 리디북스이다. 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보다 장면과 동작의 예쁨 중심으로 감상하다 보니 매 분기마다 관심이 가는 애니메이션은 한두 작품 미만이고, 매주 챙겨서 보다가도 바빠서 몇 화 놓치게 되면 완결까지 보는 걸 미루다가 결국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그나마 매 분기 화제 작품들의 제목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건 전적으로 트위터의 덕분이다.

 본격적으로 서브컬처에 빠지게 된 건 만화와 라이트노벨 때문이었으니, 결국 지금까지의 작품 소비도 대부분 서적 위주로 이루어졌다. 학창 시절부터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대략 열 권 정도의 책을 사서 꾸준히 읽었다. 집중력 탓인지 학업이 제법 바빴던 탓인지 어느새 책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보다 느려져 버렸지만 말이다.

 작년 초 미국으로 이주한 후 이러한 책 소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물론 바빴던 동안 읽지 못한 책들을 읽을 수도 있었으나 사실 당장 읽지 않았던 책들에 대한 흥미는 크게 떨어져 버리기 마련이다. 다행히 미국 알라딘에서 좀 더 비싼 가격에라도 책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국에서 사던 것에 비해 꽤 비싸다는 사실에서 오는 심리적인 저항감에 이전만큼 책 사는 데 선뜻 돈을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공간의 제약이 없으며 구매하면 즉시 읽을 수 있고 가격 역시 저렴한 전자책은 내게 있어서 책의 완벽한 대체제였다. 물론 실물 종이 서적이 갖고 있는 매력은 없는 용돈까지 털어 몇백 권의 책을 살 정도로 잘 알고 있었지만 현재 환경에서 그 매력을 고집하는 것은 사치였다. 좁은 기숙사에서 비싼 가격을 감수하며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도 걸리는 배송을 기다리는 것은 웬만큼 좋아하고 기대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감수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지금도 적극적으로 실물 서적을 구매하고 있다.)

 문제라면 한국 전자책 시장의 라이브러리가 몹시 좁다. 현재 만화의 경우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라이트노벨은 적은 작품수에 업데이트까지 느려 리디북스만을 사용하며 라이트노벨을 소비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이다. 작품에 맞춰 플랫폼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 썼듯이 플랫폼에 맞춰 작품을 소비하고 있다 보니 최근 읽은 작품만 떠올려 보면 만화가 라이트노벨보다 훨씬 많다.

 매월 초 포인트 충전을 하게 되면 14%까지 적립금을 주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완전히 리디북스의 마케팅에 넘어간 꼴이다. 포인트를 통해서 구매하는 것은 현금으로 구매하는 것과 심리적인 저항감이 완전히 다르다. 수익에 있어서 당장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들의 구매를 쉽게 만든다는 점에서 똑똑한 전략이다. 어떻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인 스팀의 대규모 할인과도 닮은 점이 있는데, 도서 정가제 탓에 할인율에 제한이 있어 소비자 입장에선 상당히 아쉽다.

 내가 리디북스를 통해 구매하는 책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예전에 읽은 적이 있으나 꼭 소장하고 싶은 시리즈고, 또 다른 하나는 실물 책이었다면 웬만해선 사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다. 재미있게도 원래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리디북스로 사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자책 발매가 훨씬 느려 이미 실물 책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소장용’ 책이라면 흔히 종이책을 떠올리기 쉬운데, 전자책 소비자라면 전자책으로 좋아하는 시리즈를 소장한다는 감각을 알 것이다. 물론 이 소장이라는 단어는 소장용 실물 책과는 달리 아무 때나 감상하기 위해 전자책으로 소장한다는 감각이 강하지만 말이다. 전자책의 접근성은 체감상 실물 책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높다. 전자책은 전자기기만 가지고 있다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뿐더러 독서광이 아닌 내겐 심리적인 거리조차 훨씬 가깝다. 실물 책을 읽기 위해선 의자나 침대에 앉아 몇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반면 전자책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열어서 눈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앞서 실물 책을 읽는 것이 사치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가격이 비싸서만이 아니다. 나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몇 시간을 온전히 책에 투자하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다. 전자책은 이 여유 없이도 원할 때 독서가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좋아하는 작품의 좋아하는 장면을 떠오른 그 즉시 라이브러리에서 꺼내 감상하는 것은 실물 책으로는 항상 가능한 경험이 아니다.

 위의 소장용 작품들을 제외하고 내가 리디북스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주로 일상을 소재로 한 만화다. NEW GAME과 같은 평범한 남성향 4컷 만화부터 34세 무직씨와 같은 성인향 작품까지, 마음이 동하면 충동적으로 구매해 생각없이 읽는다. 큰 서사 중심의 작품도 좋아하지만 섬세한 삶의 묘사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좋아하는 나로선 다양한 만화에서 다양한 일상의 모습이 표현되는 것을 읽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실물 책으로는 아무래도 투자 대비 효용이 낮다는 생각이 들고 또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어려워 좀처럼 읽지 못하고 있던 부류의 작품들을 전자책 덕분에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리디북스라는 플랫폼이 가져다 준 내 소비 향상의 변화이다.

 사실 내 소비 향상이 이렇게 바뀌어 버린 건 어찌 보면 전적으로 한국 전자책 시장의 라이브러리 부족이다. 원래 읽고 즐기던 10대 남성 대상의 라이트노벨을 전자책에서 거의 구할 수 없다 보니 리디북스 순위가 높은 작품들 중 눈에 띄는 것들을 골라 읽게 된 결과이다.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작품들을 찾아낸 건 즐겁긴 하다만, 열렬한 전자책 독자로서는 하루빨리 더 많은 작품들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읽고 싶을 때 클릭 한두 번으로 구매해서 읽을 수 있는 생태계 형성은 소비자에게도 출판사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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