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봄의 모든 것

Review 2015. 8. 10. 16:12



"와즈키 고등학교 입학생에게만 발생하는 이상한 힘―‘신드롬’. 요코스카 히로토의 시간은 그 힘을 통해 강제적으로 되돌아갔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누구의 힘이 원인인지도 알 수 없다. 남은 것이라고는 희미한 기억뿐. 그 와중에 히로토가 세운 목표는―백지로 변해버린 3년간을 최고의 학창시절로 바꾸는 것?! 소꿉동무와 마니아 친구, 범접하기 어려운 미소녀와의 접촉을 통해 시작되는 올데이 청춘 그라피티!!


from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020177>



 먼저 적습니다만 전 '하트 커넥트'의 팬입니다. 그 동안 읽은 라이트노벨 중에서 가장 소중한 걸 고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에요. 읽으면서 그 동안 생각하고 고민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해답을 슬쩍이나마 본 느낌이었고,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완결권쯤에 크게 실망해서 객관적으로 높은 평점을 주긴 어렵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외전에서 그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감성을 읽을 수 있어 제 안에선 여전히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푸른 봄의 모든 것'은 그런 안다 사다나츠의 신작입니다. 제게 명작을 남긴 작가의 차기작이니 도저히 거를 수가 없었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서긴 했습니다. 하트 커넥트 후반부에서 워낙 작가의 단점이 선명하게 드러나서 이게 나아질까 싶었거든요.


 그리고 '푸른 봄의 모든 것'은 그 걱정이 완벽하게 들어맞은 작품이었습니다.


 '하트 커넥트'에서 드러난 작가의 단점만 모아서 쓴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하트 커넥트'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작품의 설정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흡사해요. 와즈키 고등학교 입학생에게만 발생하는 '와즈키 증후군'이라니, 너무 익숙한 설정이죠. 게다가 이 증후군은 와즈키 고등학교 재학생에게만 관측된다고 합니다. 물론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쓸 아이디어가 바닥났던 걸까요. 배경 설정은 전작보다도 더 작위적입니다. 독자에게 비일상적인 세계관을 납득시킬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전작과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은 이 와즈키 증후군이 처음부터 모든 학생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전작에서의 이상 현상이 문화연구부 내부의 일이었다면 이번엔 학교 전체가 무대입니다. 이것도 '하트 커넥트'를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낯익은 설정일 거예요. 이상 현상이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가는 '하트 커넥트' 10-11권의 분위기와 흡사합니다. 노골적으로 증후군 대상자와 일반 학생 사이의 대립을 그려 놨어요. 안다 사다나츠는 개개인의 감정과 거기서 비롯된 행동을 묘사하는 데는 강하지만 군중 속에서 개인이 어떤 사회성, 정치성을 띄는지를 표현하기엔 배경 구성도 전개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푸른 봄의 모든 것'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소수가 다수에게 어떻게 싸워 나가는지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저는 설령 이런 큰 인간 관계를 다룬 작품이라도 '하트 커넥트'에서 받은 감동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끝까지 읽었는데 상쾌할 정도로 기대를 배신당했습니다.


  너무 전작과의 비교를 위주로 평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만, 객관적으로도 절대 높은 평가를 할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 전 안다 사다나츠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은 특정한 기호, 모에를 극대화시켜 독자의 기억에 남는 매력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적인 모습을 공감하게 되면서 느껴지는 매력이에요. 그러나 '푸른 봄의 모든 것'에서는 큰 인간 관계를 그리느라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은 단편적인 부분밖에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캐릭터들은 밋밋하고 인상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시로미자카나의 삽화조차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죠. 전작에서는 부드럽고 자연스런 분위기의 조성을 도와준 삽화가 이 작품에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네요.

 플롯은 어떻냐 하면 전개는 안이하고 위기는 단조롭고 해결은 갑작스럽습니다. 치밀한 구성과 충격적인 반전 같은 건 없고 사건만 계속해서 나열되다 뜬금없어서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해결이 나옵니다. 결말에선 아무런 결론도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고 후속권만 암시하고 끝납니다. 그냥 플롯 수준만 봐도 최근에 읽거나 본 작품 중에 이렇게 떨어지는 작품이 있었나 싶습니다.


 작품 전체를 서술하는 1인칭 주인공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전혀 공감이 가지가 않아요. 캐릭터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얘가 처한 상황이 독자에게 아무런 실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3년 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이게 너무 충격적이라 본인이 어떡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이 언제 올줄 알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이 작품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것을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다른 캐릭터들에게 하는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는커녕 웃음만 나옵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고, 주변 탓만 하고… 죽을만큼 노력하라고!" 이 대사가 감동적으로 느껴지나요? 결정적인 상황에 배치되면 그럴 수도 있겠죠. 이 작품에서 이 대사를 읽으나 지금 제 블로그에서 읽으나 크게 다른 느낌을 받으시진 않을 겁니다.


 라이트노벨 1권이죠. 첫 권이 명작인 라이트노벨은 썩 많지 않죠. 하지만 '푸른 봄의 모든 것'은 어떤 독자에게도 재미있게 읽힐 것 같지가 않습니다. '죽음을 앞둔' 경험을 한 독자들이라면 주인공의 서술에 강하게 공감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설령 그것을 전제로 해도 주인공의 작위적인 행동에 여전히 몰입이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 면죄부를 주려면 시리즈의 첫 권이라는 점을 들어야겠지요. 프롤로그 역할이고 이후 이어질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포석이라면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상업 작품인 이상 읽는 내내 재미가 없으면 그걸로 끝이고, 무엇보다도 후속권에 대한 기대감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리즈의 첫 권으로써도 0점입니다. 너무 재미가 없는데 후속권이 확정나 있다는 사실 때문엔 2권을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이렇게까지 썼는데 평점이 의미가 있을까요. 아마존 평균 평점이 4점이나 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읽으면서 몇 번을 덮었고 결국 처음 시작한지 한 달만에 끝까지 읽었는데 많이 실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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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K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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